교회력과 성서정과에 따른 예배와 설교를 계획하는 것이 목회에 큰 유익이 될 것이라는 제안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교회력과 성서정과가 현대 기독교의 인위적 산물이라고 오해하거나 그것들을 반영하면 예배가 길어지거나 지루해질 수 있다는 선입견을 갖고 적극적인 활용을 꺼리고 있다. 그래서 교회력과 성서정과의 기원과 간략한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력은 이미 4세기 말에 거의 완성되었고 그 이후로 약간의 수정보완만 있었다. 기독교는 시간을 매일, 한 주간, 일 년의 단위로 구조화하여 반복적으로 그 시간들을 기념하며 기독교 신앙의 형식과 정체성을 세워나갔다. 크게 두 주기(cycle)로 구분하는데 하나는 '부활절 주기'이고, 다른 하나는 '성탄절 주기'이다. 이 두 주기 밖에 있는 시간들을 '일상주기(ordinary cycle)'라고 한다. 교회력의 사용은 놀랍게도 고대 이스라엘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스라엘은 유월절, 초막절, 오순절 등을 반복적인 의례(ritual)로 만들었고, 이것을 통해 후손들에게 어떻게 예배하고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를 가르쳤던 것이다.


기독교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사건들을 달력에 표기하며 고유한 절기들을 만들고 발전시켜왔는데, 이것을 '교회력(Church Calendar)'이라고 한다. 한편 광복절, 삼일절, 환경주일, 총회주일, 창립기념일 등과 같이 국가나 교회 차원에서 기념하는 것은 '목회력(Pastoral Calendar)'이라고 분류된다. 처음으로 알려진 기독교 달력은 로마의 시민축제와 함께 기록된 것으로 여기에는 스데반과 같은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시간들도 포함되었다. 순교자들을 기리며 후손들에게 순교자가 받게 될 영광에 대해 교육하려고 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발전한 '고대 아르메니안 성구집'라고 불리는 달력은 여러 기념일들의 날짜와 장소들, 심지어는 그 때 읽었던 성경본문과 예배의 규정이나 지침을 알리는 자세한 항목들까지도 포함하며 4세기 말과 5세기 초의 예루살렘 교회들의 생활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렇게 기독교 교회력은 어느 한 사람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의 역사와 함께 그 지역적 특성들을 반영하며 발전해 온 것이다. 그런데 왜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교회력 사용을 기피하였을까? 종교개혁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력이 365일 내내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수많은 성인들을 기념하는 날들로 채워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중심으로 한 교회력과 성서정과의 본래 목적과 의미가 심하게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종교개혁자들이 교회력을 다시 회복하는 방향이 아닌 포기하는 방향으로 개혁했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세계 개신교 주류 교단들은 교회력과 성서정과의 전통을 현대 기독교의 상황에 맞게 다시 회복하고 발전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이처럼 교회력과 성서정과의 사용은 아주 오래된 기독교 예배전통 중 하나이며 나아가 시간의 구조화를 통해 신앙교육과 신앙전수를 위해 사용된 소중하고 훌륭한 교회의 자산이며 산증인이다. 따라서 언제나 성령의 역동적인 사역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영성과 교회력에 따라 예배와 설교를 계획하는 목회준비가 서로 상충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령의 역사가 교회력이라는 프로그램화된 시간 속에서 더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기에, 이 둘은 서로 보완적 관계 속에서 기독교 예배가 더 감동적인 것이 되고 기독교 신앙을 더 바르고 안전하게 후손에게 전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교회력이라는 형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다.

-대전신학대학교 예배학 김명실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