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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모르는 분이 반갑게 인사하신다. “신부님, 신부님 안녕하세요?” 내 주위에 아는 신부가 있나 보다 하고, 아무 생각없이 하던 대로 책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우리교회 교인 한 분이 “아, 신부님 아니고 목사님입니다.” 내 대신 답을 해주신다.

그런데 방금 전에 그렇게 반가운 목소리로 아는 체 하시던 중년 여성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 “왜 신부님도 아닌 사람이 신부님 옷을 입고 있어.....” 기분 나쁘신가보다. 입을 삐죽 거리며 가던 길을 가신다.내가 입고 있던 옷이 검은 셔츠에 흰 칼라를 끼운 클러지 셔츠(Clergy collar)라서 일어난 일이다.

가톨릭에선 ‘로만칼라’(Roman collar)라고 부르면서 가톨릭 신부들의 전유물로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독일에선 이미 17세기말부터 ‘라밧’이라는 이름의 흰 스카프를 루터파 목사들이 두른 것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지금 형태의 것과 거의 일치하는 실제적인 유래는 19세기 말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로 부터 시작한다. 글래스고우 지역 도널드 맥러드 목사(Rev. Donald Mcleod)가 셔츠에 착용이 쉽게 흰 목띠 형태의 옷깃(칼라)로 발전시켜 처음으로 고안해낸 것이 오늘의 클러지 칼라(clergy collar), 즉 로만칼라라고 부르는 옷의 시작이다.

가끔 이 옷의 유래가 로마 가톨릭이나 개신교회가 아니라 영국 성공회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팩트를 혼동하신 것이다. 정확하게는 영국 성공회 신문인 Glasgow Herald 1894.12.6. 기사에서 이 내용이 처음 언급되었기 때문에 이런 혼동이 생겼다. 이 신문 기사는 현대적 형태의 클러지 셔츠를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가 시작한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 이전 자료는 다른 곳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억지로 만들어 본다면, 앞서 언급했다시피 17세기 독일 루터파 진영에서 일반 고위 공직자들과 동일하게 목사들이 목에 흰 스카프인 라밧을 두른 것을 유래로 보기도 하지만 현대적 형태의 것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19세기말 우리나라에 오신 감리교 선교사인 스크랜턴 목사 역시 모양은 조금 다르지만 클러지 칼라를 즐겨 입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고, 이런 사실은 그의 선교초기 사진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20세기 초만 해도 개신교 목사들의 일반적인 옷이었다.   

이에 비해 가톨릭 교회에선 그 시작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가톨릭 교회에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인 1965년이 되어서야 사제들의 옷으로 정식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이게 참 재미있는 것은 가톨릭 내부에서 클러지 (칼라) 셔츠는 꽤 논란거리였다는 점이다. 개신교 목사들의 옷이지만 이미 1960년대 유럽 가톨릭의 젊은 신부들 사이에선 이 옷이 크게 유행했었고, 이런 유행을 거부하기 어렸웠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사제들의 정식 제의복으로 결정된 후에도 가톨릭 내부적으로 찬반논란이 일었다. 가톨릭 신부가 개신교 목사를 따라서 하는 게 자존심 상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참 재미있다. 원래 개신교 목사의 옷이 가톨릭 사제의 옷이 되었는데, 개신교 신자들은 신부들의 옷이라고 희한하게 생각하고, 가톨릭 신자는 목사가 신부 옷을 입었다고 언짢아한다.

분명한 것은 옷은 그냥 옷이다. 그러나 옷도 역사가 있다. 그러니 어디 가서 괜한 트집 잡지 말고, 괜히 아는 체 하다가 큰 코 다치지 말자.

혹여라도 장로교 목사가 이 옷을 입고 설교대에 나타나거든 '우리 목사님은 역사를 아시는 분'이라고 생각하시길 바란다.

참고로, 난 장로교 옷을 즐겨 입는 루터교회 목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