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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와 성찬에서 초의 사용에 관한 오해와 진실

최고관리자 2018-03-31 (토) 13:11 6년전 4174  

                                                                                              

                                            예배에서 초의 사용에 관한 고찰

                                                                                                                                                                                                                                                

그리스도교 예배에서 촛불의 용도는 실용성, 장식성, 예배를 위한 상징성과 관계되어 이해되고 발전되어 왔다. 역사적인 기독교 예전 안에서는 성체를 비추기 위한 수단, 감독의 권위를 드러내는 수단, 제단의 심미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장식적으로 사용된 예도 있다.

 

신학적으로는 촛불은 그리스도의 임재를 상징하고. 부활초의 경우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기도 한다. 제단 위 촛대의 위치설정은 12세기에 처음 사용되었으며, 촛불의 숫자와 배열의 방식은 차이가 있으나 제단 위의 촛불의 배치는 교회의 하나의 관례가 되었다.

 

기독교 예배에서 촛불은 세 가지 용도로 사용되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첫째는 조명을 위한 실용성, 둘째는 강단의 장식, 셋째는 제의적 용도가 그것이다. 촛불은 단지 물리적 조명수단 뿐만 아니라 예배 행위의 본질과 관계된 신학적 의미가 그 안에 있다. 예배에서 촛불의 사용에 관한 역사를 명쾌하게 정리하기란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 여기에는 유대교의 성전과 회당예배에서 촛불의 역할이 실용적, 신학적 의미에서 어느 정도 그리스도교 예배에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는 성경을 읽기 위한 실용적인 용도로 촛불을 사용하였다. 사도행전 208절은 드로아의 성찬집례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본문인데 여기에 많은 촛불이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이 집례가 한밤중에 이루어 졌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 많은 촛불은 신학적 예배적 제의적 용도로 사용되었다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45절은 일곱 촛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는 성전에 대한 묵시적인 통찰이 반영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하겠다. 촛불의 사용이 카타콤 예배라는 초기교회의 예배환경으로부터 자생했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터툴리안은 한 낮의 불필요한 촛불사용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데, 이는 이교에배에서 촛불의 사용을 타깃으로 삼은 듯하다.

 

, 기독교의 예배에 촛불이나 등불의 사용은 철야예배라는 독특한 예배장르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가장 역사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전통적인 철야예배는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예배인데 사도행전 20:8절의 배경이 된다. 이에 따르면 본문의 많은 촛불에 대한 언급은 철야예배가 그리스도교 예배에서 촛불의 사용의 기원이 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역사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 철야예배에서의 촛불의 사용은 그 초기에는 조명을 위한 물리적, 실용적 기능을 담당하였으나, 후에 부활주일 촛불(Easter Candle)의 점화가 하나의 전통적 예배관례가 되어감에 따라 점차 예배적·상징적·제의적·신학적 의미와 관계되어 발전하였던 것이다.

 

4세기까지 등불이나 촛불은 기독교예배에 있어서 하나의 구성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장식용 촛불이 사용된 것은 4-5세기 Liber Pontificalis 문서에 나타나는 청동과 은촛대, 왕관과 가지달린 촛대(Candelabra)가 등장한다. 이는 단지 조명이라는 실용성보다는 제단에 대한 헌신과 경외의 장식용 표현 매체로 제작배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제단위에 촛불을 배지하는 것은 중세후기의 관습인데 이러한 배치에 대한 언급은 12세기 문서에 와서 나타난다. 이는 성체와 성자의 유골에 얽힌 당대의 신앙관행에서 발전 되었는데 이노센트 3(1198)De Sacro Mysterio는 촛대의 제단 배열에 대한 관습과 전통이 무엇으로부터 발전 한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전통적인 미사에서 감독과 그 보조자들이 불과 향을 대동시키는 것은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존재해 왔던 관례였다. 이러한 관습은 세속 황제나 고관들의 의전 관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미사에서 촛대는 제단의 위가 아니라 제단 주변에 놓이게 되었다. 촛대를 제단 위에 배치하는 관습은 중세 후기에 와서 시작되었다.

 

16세기까지 라틴 서방교회에서는 촛불사용에 대한 상당한 자유가 부여되었는데 중세 말기에는 제단위 촛대의 숫자에 관해서도 획일적인 규정이 없었다. 최근까지 로마가톨릭교회는 장엄미사 때 6, 감독의 미사 때는 7개의 촛불을 켤 것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촛대는 장식처럼 늘 제단 위에 놓여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직 예배 시에 만 그 곳에 배치한다는 점이다. 또한 촛불은 엄숙함과 신성함의 다양한 차원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나 이 촛불이 제단과 성찬 사물에 바라보이는 회중의 시선을 가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19세기 영국국교에서 성찬식에 촛불사용의 적법성에 대한 논쟁이 일기도 하였지만 찰스 2세의 왕정복고이후 성찬식에서는 전반적으로 촛불이 사용되는 경향이다. 성공회 전통을 가진 보수파들은 1574년에 발표된 에드워드 6세의 칙령을 환기시킨다. 이 칙령에는 그리스도가 세상의 참 빛이므로 성례전에 앞서 두 개의 촛불이 제단 위에 배치되어야 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일곱 개의 가지가 달린 촛대(seven-branched candlestick)를 제단 위에 놓는 것을 관례로 하고 있다. 성찬이나 성무일과 이외에 촛불은 그리스도교 입교예식(Christianite of initiation)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초기교회에서는 도유식을 끝낸 예비자가 그리스도교 입교식의 마지막 순서인 성찬에 참여하기 위해 회중이 모여 있는 본당을 향해 세례소를 떠나 행진 할 때 초를 들게 했는데 이후에 이것은 부활절 초의 유래가 된다.

 

 

 

성찬연구원 [2018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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